부산대원어묵이홍종·설미선 사장

Where are you from?
나란한 무쇠가마솥에 꼬불꼬불 끼워 놓은 어묵이 가지런히 누워 있다. 어 묵탕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은 지나는 사람들의 코끝을 자극 한다. 가마솥 뒤로 보이는 지도, Where are you from? 인상적이다. 지도 위에 붙어 있는 무수한 스티커, 대원어묵을 다녀간 사람들의 발자취다. 대 한민국 지도 위에는 빽빽한 스티커로 빈 자리가 없다. 지도 하단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국기가 그려져 있어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의 흔적도 볼 수가 있다. 국내 방문객으로는 서울, 인천 사람들이 가장 많고, 나라별로는 대만, 홍콩, 미국, 일본, 중국의 순이다. 글로벌한 가게, 대원 어묵이다.

‘대원어묵’ 파란색 작은 돌출 상호 간판이 이색적이다. 명패처럼 보이는 작 고 앙증맞은 간판 아래로 들어서니 잘생긴 훈남 캐릭터인 이홍종 사장(19 57년생)과 선이 고운 동양적 미인인 부인 설 미선 씨(1962년생)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서울사람이다. 퉁명스럽고 거친 부산 사투리가 난무하는 시장에서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의 사장님을 만나니 의외다 싶다. 부산어묵의 본거지에 서울사람이 들어와 있으니 말이다.

가게의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어묵집 같지 않게 카페 분위기다. 입구 처마에 걸려 있는 초롱등은 단정하면서도 심심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빛난다. 실내는 정결하다. 벽은 여러 컬러를 사용했지만 요란하지 않고 차분하다. 색감이 좋다고 했더니, 환하게 웃는 이홍종 사장은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은, 모두 자신의 솜씨라고 한다. 원래 인테리어를 하시던 분이었냐,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다만 솜씨가 좋을 뿐. 본인의 업은 원래 유통업이라고. 몇몇 직업을 거치긴 했지만 20여 년 동안 유통업에 종사했고, 유통업을 하는 동안에는 오직 대원어묵과 어묵연육만을 취급했다고 하니 어묵 베테랑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어묵은 간단해 보여도 간단한 음식이 아닙니다. 어묵 반죽을 하기 위한 연육의 온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못쓰게 되거든요. 연육이 얼마나 예민한지 모릅니다. 연육은 어종에 관계없이 선상 연육과 육상연육 두 가지로 나눠집니다. 선상연육은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을 배 위에서 바로 처리한것을 말하구요, 육상연육은 일단 육상에 내려진 생선으로 만드니 당연히 선도나 육질의 탄력성 등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선상연육은 비쌉니다. 저는 선상연육만 취급했지요.”

서울에서 어묵의 주재료인 연육 유통업을 하던 이홍종 씨가 부산으로 내려온 것은 시대의 변화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라고 하였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다변화하는 시대현실 속에서 점점 더 치열해지는 유통업의 미래가 그리 밝아보이질 않았다. 또 하나는 어묵의 주재료인 연육만을 취급하다 보니 자연스레 부산어묵에 관심이 간 까닭이었다.

“어묵하면 부산어묵이지요. 어묵연육만 20년째 유통하다 보니 어묵에 관한 알만큼 알거든요. 우리나라는 모두 부산어묵입니다. 다른 건 없어요.” 어묵을 할려면 어묵의 본고장인 부산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중에서도 어묵의 발원지인 부평깡통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고했다. 대원어묵을 전문으로 하다 보니 대원어묵 상호를 건 가게를 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이곳에서 개업을 한 것은 2013년이었어요. 이곳 어묵골목의 터줏대감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늦은 편이죠. 다만 전 그냥 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맞다. 처음 대원어묵을 찾았을 때, 그 시각은 오전 11시경이었다. 그때 부부는 이제 막 가게에 나와 셔터를 올리고 있었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의 비유를 들자면 확실히 베짱이과에 가까워 보였다.

“여유있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보통 하루의 시작을 광안리나 수영구의 유명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즐기며 느긋하게 시작할 때가 많아요. 제가 워낙 빵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아침 시간의 그 느긋함을 즐기며 살고 싶거든요. 사람들은 저보고 ‘이해가 안 된다’, ‘게으르다’ 라고 할지 모르겠지만요. 하하하. 그래도 할 일은 다 합니다. 노는 것 같아 보여도 아침의 그 느긋한 시간에도 물론 일은 하지요.”

이사장은 핸드폰을 꺼내 보여준다. 유통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니 각종 첨단 기기와 친한 얼리어답터다. 핸드폰으로 서울로 보낼 제품, 물량을 모두 체크하고 발주까지 한다. 대량 판매는 거의 아침의 한가한 시간, 페에서 빵과 우유를 즐기면서 이뤄진다. 인터넷 마케팅도 물론이다. 직접 가게의 매대 앞에 서서 외국인 고객을 응대할 때는 구글 번역기를 통해 소통한다.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드는 이 사장. “오케이, 구글. 베트남어로 ‘안녕하세요’가 뭐야?” 핸드폰에서 AI 여성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신짜오.”즉석에서 구글 번역기 시범을 보인다. 유쾌함이 묻어난다.

“제가 원래 스포츠를 좋아합니다. 골프 구력이 18년이구요. 수상스키, 서핑, 산악자전거를 즐겨요. 함께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죠.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를 읽어야 해요. 파도의 변화를 즐겨야 하는 거죠. 전 그렇게 살기를 원합니다. 남들과 같이 많은 부를 갖지는 못했지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매 순간을 즐겁게 살고 싶은 거죠. 90세가 될 때까지 이렇게 살고 싶은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그래서 이 씨는 모든 일요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쉰다. 쉴 때도 폼나게 쉰다고. 셔터를 내리면, 그곳에 이런 글씨가 쓰여 있다. ‘대원어묵, 일요일은 쉽니다’ 라고. 자영업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어묵업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시간에 쫓겨 산다. 큰 부를 축적한 이들은 더욱 그렇다. 매순 간 일에 열정을 불사르다보니 취미나 스포츠에 쏟을 시간이 부족하다. 그들에겐 일이 즐거움이고 재미다. 그런 동종업계 사람 들과 비교해 보면 대원어묵 이홍종 사장은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 유쾌하고 즐겁게 살 것. 아무리 바빠도 즐길 것은 즐겨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기에.

“일요일에는 와이프랑 차를 타고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찾아 다녀요. 섬에 갈 때면 배에 차를 싣고 가지요.”

유쾌하고 따뜻한 이홍종 부부를 닮아서 그런지, 대원어묵의 어묵국물에는 남다른 부드러움이 있다. 일반 어묵국물처럼 텁텁하지 않고 깔끔하다. 은은한 가쓰오부시향과 함께 기분 좋은 따뜻함이 있다. 어묵은 딱 먹기 좋게, 입안에 씹었을 때 대원어묵만의 특징인 탄력이 그대로 전달되는 상태로 서비스된다.

“옛날 어묵과 달리 요즘 어묵은 고급화되어 그 자체 의 맛이 있어요. 그 자체의 맛을 즐기려면 적당히 익었을 때, 탄력이 느껴질 때가 제일 맛있죠. 물론 옛날 어릴 때 먹던 기억으로 퉁퉁 불은 어묵을 찾으시는 분이 있긴 합니다만. 하하하. 그런 분들에겐 좀 더 익혀 맞춤으로 해 드리죠. 하지만 사실 퉁퉁 불은 어묵은 가장 맛있는 상태의 어묵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보통 울적하거나, 생의 의욕이 없을 때면 전통시장이나 새벽시장을 찾곤 한다. 바쁘게 돌아 가는 삶의 단면을 생생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시장인 부평깡통시장, 그 안에서도 대원어묵에 가면 웃음이 난다. 유쾌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이들이 그곳에 있다. 희.로.애.락. 모든 감정은 전염된다. 그중에서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면, 내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면, 즐거움이 묻어나는 곳, 대원어묵을 찾아가 보라.

Where are you from?
당신이 어디서 왔든 대원어묵에 가면 행복감을 선사하는 따뜻함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왕꼬부리